어릴 때부터 선물보다는 돈이 좋았다. 돈으로 받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으니까. 내 마음에 꼭 맞는 선물이 없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평소에 취향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향을 아무도 모르니 당연히 그에 맞는 선물을 받지 못 한다. 취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나는 선물 뿐만 아니라, 여행, 음식 등 여러 즐거움에 대해서 항상 불만이었다. 내용 자체가 싫다는 건아니지만, 어떤 것을 좋다고 느끼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는 유형이 아니다. 해야만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근데 재밌는 건 꼭 하면 안 되는 거더라. 스타크래프트를 참 좋아했는데 고1 때에 딱 끊었다. 공부하려고 말이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하니까 했다. 사실 공부 자체가 완전히 재미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재미는 옆 자리 짝꿍보다 더 잘 하고 싶은 경쟁심이 더 우선이었다. 막 수학이, 어떤 과목이 정말 좋아서 재밌었던 건 아니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했던 것도 즐거워서 그런 건 아니다. 아버지의 기대가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좋은 대학 갈거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기대가 깨졌던 것은 수능 날이었다. 재수를 해서 기어코 원하는 대학교를 갔지만 무언가 뜻이 있어서 했던 건 아니다. 왜인지는 모르나, 성공해야겠다는 조급함이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막상 성공하는 사람은 감동을 잘 받는 사람이었다. 사회 초년생 나이가 지나니, 주변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대단한 부를 이룬 사람이 있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친구가 많다. 물론 돈도 잘 번다. 이 친구들을 보니 선물에 감동을 잘 받는 사람들이다. 호불호가 확실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면 아이처럼 그렇게 좋아한다.
뭐 하나에 꽂히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다. 회사 다닐 때에도 퇴근도 눈치 안보고 인사하며 딱 나가더라. 일도 잘 해놓으니 미움 받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며 퇴근을 하듯 회사도 박차고 나간다. 무언가 정말로 간절하게 원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열정적이고 몰입하고 싶다는 부러움이 샘솟는다.
감동 받는 것도 능력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변에 말하는 것도 용기다. 즐거움을 미룬다고 나중에 즐거워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 감동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오늘 감사하자. 선물을 받을 때 아이처럼 즐거워 하며 주는 사람의 마음을 뿌듯하게 사람이 되자. 따뜻한 연말은 나의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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