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일 때에 학교 도서관에서 읽기엔 다소 발칙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대학은 없다. 캐롤라인 버어드(1996). 읽으면서 굉장히 재밌었던 부분은 졸업을 앞둔 그 당시에 생각하던 불만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다니는 대학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경제적인 구조는 직업의 초보자들에게 아주 불리하게 기울어져 가고 있다.
첫째, 그들은 변화하는 경제 구조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승진의 길로 연결되는 신규 채용 직업이 훨씬 줄어들었다. 젊은이들은 사환, 견습공, 대리 근무자, 수습 사원 등으로 일을 시작하곤 했었는데 고용자들은 이들에게 교육 투자를 한 셈이었다. 요즘은 초심자들이 단련해 둔 일상적인 직업의 많은 부분을 기계가 한다. 그리고 새로 생긴 대부분의 새로운 직업들은 서비스직이다. 호텔, 식당, 주유소, 소매상, 은행, 유원지, 그리고 관광객의 시중을 드는 직업 같은 것들이다. 몇몇 예외도 있지만 이런 직업들은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모두가 낮고 판에 박힌 것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막판의 직업인 것이다.
둘째, 젊은이들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실업 사태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
경제가 확대되고 고용자들이 사람을 자꾸만 필요로 할 때 초보자들은 기회를 얻는다. 경제가 불안정한 때 또는 경제의 확대가 더딜 때에도 고용주들은 새 사람들을 쓰지 않는다. 십대의 실업 문제가 기성인들의 실업 문제보다 더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골칫거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1974년 경제 성장이 극히 저조할 때의 십대의 실업률은 20% 내외일 정도로 높았다. 웨슬리언 대학의 어느 3학년생은 피츠버그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했었다. "모든 백화점, 보건업소, 약국, 슈퍼마켓 등에 일자리를 신청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아는 애들 여러 명이 일자리를 못 구했지요. 그래서 여름학기 학교에나 가려고 해요."
풍요한 사회에 있어서 대학은 일자리 없이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거리에서 빈둥대지 못하게 해주는 매력적이고도 값비싼 수단이 되었다.
컬럼비아 대학의 제임스 맥길 총장은 대학이 따분한 젊은이들의 수용소로 전락되는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대학의 학생 활동은 최소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노예의 상태인 것이다. 오그스버그 대학 한 4학년생은 자신이 대학을 떠나는 데 대해 어떤 기분이었는가를 말해 주었다. "말도 말아요. 공부하는 건 정말 지긋지긋해요. (만약 대학 생활이) 돈을 벌고 언제나 쓸 돈을 듬뿍 가지고 있고 남의 간섭을 안 받는다면 정말 멋있을 거에요. 게다가 머리에 뭣 좀 집어넣으려고 4년이나 고생한 뒤에 누가 일하고 싶겠어요?"
무려 1996년에 쓰여진 책이다. 우스갯소리로 이집트에 쓰여진 벽화에도 젊은이의 무례함을 한탄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몇 천 년 뒤에서 보기엔 5,000살이든 5,010살이든, 그게 그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불만보다는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도전하기에 쉬웠던 때는 없었고, 당장은 크게 느껴지는 고민도 몇 년 정도만 지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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